Challenging한 삶이란 언제나 새로운 도전이 주는 긴장감과 창의성, 가슴 슬렘이 있기에 아름답습니다. 반면 mannerism에 빠진 인생은 의무감만으로 가득한 루틴한 일상이 주는 답답함과 무감각함으로 인하여 비틀거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청신한 새벽공기와 함께 모험과 긴장감과 즐거운 대화로 시작했던 여행도 길을 걸어감에 따라 뜨거워지는 햇살 아래에서 짜증스럽고 동시반복적인 발걸음의 내디딤으로 변화되기 일쑤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바로 이 매너리즘으로 가득한 부조리한 일상을 매일 대면하며 살고 있습니다. 과거를 더듬어 보면 챌런징한 삶을 살았던 순간들이 생생히 기억의 저편에 살아 숨쉬고 있는 반면에, 무미건조한 삶을 살았던 시간들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도전적인 삶이 주는 1년이 매너리즘에 빠진 10년보다 생산적일 것입니다. 아마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이 21세기의 일상에서 삶의 주제가 되어야 될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 있는 생활을 어떻게 영위할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친구를 찾습니다. 좋은 친구란 오랫동안 만났으되 끝없이 창의롭고 흥미있는 영적 대화를 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이런 좋은 친구들이 주변에 가득하다면 그는 행복할 것이고 그의 인생은 성공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친구가 한 명도 없다면 인생이 힘들어질 것임은 불문가지입니다. 특히 종교 안에서 이처럼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은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위한 필수조건일 것입니다. 친구는 매우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친구를 목적의 대상으로 보지 말라는 과거의 경구가 생각나기도 하고 힘든 시절 사귀었던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빈시지교의 성어도 생각납니다. 친구는 또한 지위고하와 연령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일단 친구가 되지 못한다면 사람간의 관계는 업무상의 관계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가슴과 영혼의 교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가장 좋은 예로는 예수님께서 만났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였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는 우선 친구가 되었고 그리고 나서 영적 스승이 되었습니다. 가정에서도 부부간에도 그리고 교회에서도 목장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친구가 되고 우정이 꽃피고 그리고 나서 아름다운 영적 교제가 있다면 참으로 좋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교제를 지향하는 쉴만한 목장의 6월 첫째주 모임이 지난 주 금요일 저녁에 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자매님들께서 맛있는 저녁식사와 다과를 준비하여 주셨고  곧이어 처음으로 강경남 형제께서 챌런징한 사회를 맡아 진행한 흥미진진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대화의 주제는 전주 목사님 설교 내용이었던 사도행전 16:6 ~ 16절까지의 내용이었습니다. 바울이 갔던 길을 목적이 이끄는 삶,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끌어 가셨던 삶이라는 점에 비추어 각자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이끌어 주셨던 신앙생활의 고백들이 생생한 간증으로 이어져 감동을 주었습니다바울을 이끌어 갔던 삶도 편안하고 안정되고 사회적 관점에서 성공적인 무미건조한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 아니라 숭고한 목적과 창의성으로 가득한 도전적인 것이었기에 오히려 바울은 환란과 신고 속에서도 의미 있을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 성숙하고 깊이 만족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날도 이런 저런 담소 속에 12가 넘어서야 모임을 파하였습니다. 다음 모임은 최장로님·안권사님 댁에서 갖도록 하겠습니다. 더운 날씨 속에 영육간에 건승하시기 바랍니다.